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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

Pooh lamp

그냥 정말 별 생각없이 예전에 쓰던 핸드폰들을 눌러보고 있었는데

딱 하나 전원이 들어오는게 있었어.

이게 언제 쓰던건가 하고 처음에 잠겨있는 배경화면을 보는데

글쎄 그사람이름♡내이름 이라 되어 있는거야.

갑자기 누가 머리통을 흔드는 것처럼 멍해져서 번호들을 눌러보는데

지금도 매년 며칠 전부터 떠오르는 그사람 생일이 비밀번호더라.

비밀번호를 풀어보니 그 사람 환하게 웃는 얼굴이 배경화면이었어.

갑자기 울컥했는데 억지로 웃었어. 그래 우리 만날 때에는 스마트폰이 아니었지 하면서.

문자메세지는 다 지워져있고 메모장엔 이상한 암호 같은거만 있어서 이게 뭔가 싶었어.

문득 그냥 꺼버릴까 하다가 그래 언제 또 보겠어 하며 사진첩에 들어갔어.

사진이 참 많더라.

같이 찍었던 사진들. 그 사람을 찍었던 나. 나를 찍었던 그 사람이 있었어.

커플링 맞추던 날. 스케이트 타던 날. 눈길 위에서 찍은 사진들. 뭐 그런 것들.

하나하나 떠올리며 잠깐이나마 웃었어. 또 울컥했었는데 또 억지로 참았어.

그러다 폰을 닫으려는데 끝에 동영상이 있는거야.

동영상은 뭔가 하고 눌러보고서는 더 이상은 참을수가 없더라.

어떤 연극을 보고 오던 길이었나봐. 배우의 말투를 흉내내던 그 사람과 내가 웃고 있었고.

오리배타며 페달 밟는게 힘들다 투정하던 그 사람과 내가 있었고

내가 머리 조금 아프다고 말하자 자기도 머리 아프려한다며 걱정하는 표정의 그 사람이 있었고.

누가 제일 좋냐는 물음에 너라고 말하며 베시시 웃는 그 사람이 있었어.

갑자기 눈물이 나왔어. 나이 서른 넘게 먹도록 처음이었어. 그렇게 울어본건.

언젠가부터 가슴 한쪽을 뭔가 꾹 누르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그때야 알았어.

처음 해본 사랑이 그 사람이었고 처음 했던 이별도 그 사람이었어.

난 꼭 조금씩 늦는 편이었는데 내 마음마저 이렇게 뒤늦게 깨달을진 몰랐어.

만난지 십년이 지나서야 그 사람 아니면 안되는구나 싶었어.

너무 그립더라. 너무 보고싶었어. 너무 슬프고 미안하고 그랬어.

그러다 내가 너무 싫었어. 죽고싶을만큼 내가 너무 미웠어.

그렇게 시작된게 이상하게 멈추지가 않더라. 집에 아무도 없던게 다행이다 싶었어.

다시 한번 만나서 얘기하고 싶어. 그래도 그럴수 없어.

너무 늦었어. 아마 그 사람 행복할거야.

사람들 말처럼 시간 지나면 나아지겠지.

미안해. 아무나 붙잡고 아니 아무도 듣지 않아도 내 얘기만 하고 싶었어.

담배나 피러 가야겠다. 이러다 죽겠지 뭐.

 

-14년 초 늦은 겨울비인지 이른 봄비인지가 내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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